재담 연희극 '이야기 심청' - 효를 강요해도 되는 것일까 + 공연 읽어주는 역장



지난 6월 1일에 대학로를 지나다 보게 된 재담 연희극 '이야기 심청'은 상상속에서나 가능했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요즘 영화 어벤져스에 영웅들이 모아져서 나오듯 어린시절에 한번쯤은 우리의 고전 주인공들이 한데 모이면 어떤 재미를 선사할 것인지를 어릴 적에 상상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스포일러 주의

재담 연희극이라 붙여진 이유

'이야기 심청'은 그런 의미에서 관객에게 재미를 주었던 연극이었다. 그런데 왜 연극이라 부르지 않고 '연희극'이라 부르는 걸까. 물론 연극이라고도 할 수 있었겠지만 이 극은 판소리가 주된 공연이었고, 마치 시골 장터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꾼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듯 공연을 이어갔기 때문에 연희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담의 뜻은 아시겠지만 지금의 '개그'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개그 그 이상의 뜻이 내포되고 있는데 그 차이를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다. 그냥 웃기에는 그 웃음 속에 뼈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외래어 개그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유머라는 것이다. '이야기 심청'은 바로 이런 사전 배경을 안고 시작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꼬기 보다는 장면 장면을 충실히 보여주지만 그 의미를 다시 새기게끔 해준 몇 가지 대목이 있어 펜을 들게 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심청전의 효는 의도된 것인가

이 극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심청이의 효가 의도된 것이냐 아니냐이다.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기 위해 인당수에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효가 될 수 있냐는 것이 여기서 묻고 있는 질문이다. 원래 진정한 효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인데도 심청이는 부모보다 먼저가는 불효를 저질렀는데도 어떻게 효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응당 수긍이 되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이 대목에서 심청전과 별주부전의 이야기를 결부시켰다. 토끼대신 용왕의 병을 낫게 하려고 심청이를 어쩌면 용궁에 데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이 극에서 재미를 준다. 흥미로운 건 별주부가 자신의 생명을 다해 용왕의 목숨을 구하려고 육지에 나갔던 부분과 심청이가 자신의 목숨과 바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고 한 대목이 묘하게도 겹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심청전과 별주부전이 만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큼의 충은 보일 수 없으며 이 충의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효의 덕목을 의도적으로 얹은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극은 꼬집고 있다. 다시말해서 심청이의 효가 효 자체의 모습보다는 충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대목이다.

심학규가 이 시대의 아버지였다면

만약 이 시대의 아버지로서 심학규라면 폐륜 아버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집안 형편을 알면서도 스님에게 공양미 삼백석을 약속하지를 않나, 약속을 했다고 딸을 팔아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한 이 심학규라는 인간이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심청이를 젖동냥으로 키워냈다고 해도 너무한 것은 너무한 것이다.



물론 심학규는 심청이가 청으로 가는 뱃사람들에게 팔려간 후에 알았다고 하지만 그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뺑덕어미에게 놀아나는 모습을 보면 심학규가 과연 딸 청이를 잃고 슬퍼했는지도 의심이 갈 뿐이다. 물론 365일 슬퍼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대로 살았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 아닌가 싶다.

우리가 아는 '효'의 정체는?

자식만 효도를 다해야 하는 건 아니다. 심청전을 보면서 의문이 갔던 대목을 이 극이 긁어주어 속이 시원했던 건, 바로 우리시대든 조선시대든 사회는 효와 어른 공경을 마치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효는 충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삼스럽게 요즘 이슈가 되었던 '지하철 된장녀'라는 제목의 사진이 떠올랐다. 노인이 있는데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누군가가 사진을 찍은 후 저런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트린 것이다.

웃기게도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효를 강요하는 사회인지 다시 깨달아야 했다. 재미있는 건 그런 상황에서 직접 용기를 내어 말하지도 못하면서 인터넷의 힘으로 마녀사냥을 꾀하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무섭기까지도 하다.

웃음을 잃은 이 시대에
'짬뽕'을 선사하다


우리는 어쩌다 웃음을 잃은 것일까. 왜 이해심이 부족하게 된 것일까. 왜 마녀사냥을 하게 된 것일까. 왜 우리는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을 다시 던져 보자. 적어도 누군가의 생각에 맞춰 더이상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남을 비웃는 개그가 아닌 사회를 꼬집고 모두가 공감하는 웃음이 다시 돌아오길 이 이야기를 관람하며 바랐다.

그럼에도 심청전 이야기는 고정관념에 의해 심청이는 황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시 이 극은 별주부전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심청이와 심학규는 서로 용궁에서 다시 재회를 하고 용왕의 선처로 둘다 인간사회로 다시 돌아온다. 누군가에게는 희극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불쾌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결말이 맘에 든다. 적어도 '황후'라는 신분세탁을 꿈꾸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민의 행복 그 자체에 집중을 했다는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꼬집을 곳은 제대로 꼬집고 웃음을 선사한 재담 연희극 '이야기 심청'을 보시면서 우리의 현실을 되짚어 보길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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