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에 더 굳건해질 20살에게 바치는 영화, 캠퍼스 - 세 가지 초상 + 영화 읽어주는 역장



위드블로그 리뷰어로 신청되어 인디플러스 극장에서 월례비행 2012 독립영화 초청작 '캠퍼스 - 세가지 초상'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는 나의 대학생활을 돌이키며 가고자 했다. 내 대학생활도 금전적으로 그리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기에 나는 장학금을 받기에 노력했고 실제로 3학년 때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의 부담을 지워내려고 노력한 것이지만 사실 장학금도전부 받은 것이 아니라 일부만 받은 상태에서 얼만큼이나 부모님의 부담을 지워냈을까 회의가 든다.



어쩌면 공부만 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나름대로의 철학을 내던지고, 봉사활동과 기업인턴 그리고 여행을 더 즐겼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니면 책이나 문화적인 콘텐츠를 더 접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내게 잃어버린 20살, 그때의 모습을 비춰지지 않을까, 혹시 보상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캠퍼스하면 가슴떨릴 누군가를 위해 이 영화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포일러 주의

대화의 단절이 만들어 내는
20살의 우울한 자화상


영화는 세 편의 독립영화로 이뤄져 있다. '꾼', '졸업과제', '캠퍼스'의 순서로 상영된 이 영화들이 보여주는 건 대화가 없는 세계였다.

은 상도동의 철거민들을 도와 재개발을 막는 젊은이와 용역에서 일을 하며 불법으로 재개발을 하려는 젊은이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이들 중 누가 정의고 불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 영화를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어떤 길이 주민을 위한 길인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살아야 하는 터전이 없어지는 현재, 국가에서는 어떤 보상도 없이 나가라고만 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사실 철거 지역의 주민과 용역 그리고 그 배후의 한 도시의 시청이라는 곳은 분명 대화를 통해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있을지도 모르는데도 서로가 완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통에 갈등은 깊어 간다. 대화를 통해 갈등을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생각일까.

졸업과제는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나오지만 역시 대화가 없이 진행된다. 한 남자가 인터뷰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자신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영상들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 영상들에서 나오는 말들도 모두 남자의 혼잣말이 다이기도 하다. 대화의 단절이 어떤 결말을 이끌지는 모르겠지만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서대로 '꾼'의 황현진 감독, '캠퍼스'의 유재욱 감독, '졸업과제'의 김용삼 감독, 월례비행의 남다은 사회자]


거기다 그가 왜 외계어를 쓰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지도 처음에는 짐작하지 못했다. 디데이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남자의 알 수 없는 평온한 미소가 더 궁금해졌었다. 물론 영화가 끝났을 때는 그가 왜 외래어를 쓰고 인터뷰 영상만 흑백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지만 대화의 단절이 생각보다 길었다. 보통 이런 의도적인 장치는 거부감이 들기 마련인데 이 영화들 모두 대화의 단절을 쓰고 있어 적응이 되어갔다고 말할 수 있겠다.

캠퍼스도 역시 정상적인 대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의 정상이 어떤이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한 여성의 인터뷰에 응하는 두명의 남자 중에서 한 명이 "여성의 똥은 먹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보통의 남성에게서나올 수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캠퍼스의 세계가 꾼이나 졸업과제보다는 가장 현실세계와 유사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뭔가 현실과의 간극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 영화 역시 일반인이 생각하기 쉽지 않은 방법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일부러 일으켜 보험금을 타려는 이들의 모습이 그리 썩 유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결말을 내포하는
영화 세 편을 바라보다


'꾼'에서는 철거 지역에서 철거를 반대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20대의 젊은이가 욱 하는 성질에 집을 비우고 용역들이 있는 곳에 가면서 죽음의 그림자를 이끌어 낸다. 바로 자신에게 아기를 맡기고 간 애 엄마가 하듯이 자신도 아기를 서랍에 집어 넣고 용역들이 있는 곳에 낫을 들고 가면서 사단이 벌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꾼' 중에서(사진출처 : 다음)]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그 순간에 혹시나 모르는 사고가 터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젊은이는 결국 아기가 있는 곳에 돌아오다 경찰에 잡혔고 아기가 들어 있는 서랍은 용역들이 휘두르는 쇠망치에 의해 부서진다. 귀를 기울였다면 아기의 울음소리가 분명 들렸을텐데도 아랑곳없이 아기를 죽인 그 장면이 아직도 선하고 끔찍하다.



'졸업과제' 에서는 자살을 한 것으로 죽음을 표현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졸업과제'의 의미는 인생을 마감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이 모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는 자살을 한 것일까? 삶이 무료해서? 아니면 자신이 키웠던 두 강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부분을 반성하여 자살을 한 것일까? 사실 이 영화에서만큼은 왜 죽음이 나왔는지를 아직도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영화 '졸업과제' 중에서 (사진출처 : 다음)]


이해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말 부분에서 이 영화가 어떤 삶과 죽음의 중간단계를 이끌고 가는 저승사자와의 인터뷰인 것처럼 꾸며져 있어 조금은 의아해 하면서도 다시 이 인물과 개들이 반갑게 해후하는 것을 보면 무료한 20대의 결말로 이해해도 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캠퍼스'가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가장 현실적인 20살 대학생들의 풍경을 담아낸 것은 확실하다. 높은 등록금 때문에 시위도 하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도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해공갈단이 된다는 설정이다. 결국 그 자할공간단은 성공하지 못하고 한 친구가 죽는 설정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영화 '캠퍼스' 중에서 (사진출처 : 다음)]


물론 이러한 상황들이 있을 수 있지만 보통 학생들이라면 평범한 알바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이들의 모습과 누구와도 제대로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나오는 대화의 단절은 과연 이들의 탓으로만 놓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이나 그들의 주변 상황이 이들과 제대로 맞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받기에 더 굳건해질
20살에게 바치는 영화


사실 '캠퍼스'에서 주인공 중 한명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 컴을 훔쳐다 팔려고 교수에게 드릴을 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교수는 학생에게 왜 리포터를 내지 않았냐고만 묻는다. 이 주인공도 교수에게 드릴만 빌려달라고 하는 장면이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밖에 없는 게 교수와 이 주인공의 태도 때문이다.

만약 교수가 "힘든게 없냐"라고 물었다면 이 주인공은 생활고의 어려움을 어쩌면 호소했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이 주인공이 먼저 교수에게 힘들다고 말했다면 자해공갈단 같은 길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영상에 나온 교수가 결국은 드릴을 빌려주듯 그렇게 권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꾼'에서도 용역에서 일하는 젊은이와 철거 지역에서 주민들과 시위를 하는 그 젊은이를 축으로 하여 좀더 협상이 이뤄질 수 있었다면 누구도 죽지 않는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말이라서 쉽게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너무 극과 극으로 나눠져 있는 이들의 영화세계가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들이 해석한 사회가 이렇게 아프다는 것에 그 시기를 지나온 나는 그저 안타까움을 내비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조금더 굳건해 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 상처받았지만, 내일은 그 상처자국이 아물 수 있도록 이 시대의 20대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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