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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향수와 첫사랑 - 건축학개론 vs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by 간이역

문화계 흐름이 7080을 추억하는 분위기에서 어느새 90년대 향수에 빠져들고 있다. 90년대에 중고생 혹은 대학생이었던 이들이 현재 30대로 접어들면서 '그때 우린 그랬지'라고 추억하는 셈이다. 사실 그 추억이란 것이 사람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간직하게 마련이지만 자신의 기억 속 어린시절은 지금보다는 낫다고 느껴지기에 '그때 그시절'의 향수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왜 그러한 향수에 빠지게 되었을까. 또 왜 그때 그 시절의 그녀들을 추억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한번쯤 정리하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현실의 삶이 갑갑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내가 그렇게 원했던 미래의 모습이 아니기에 더욱 그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영화 건축학개론과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90년대의 향수와 첫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지금부터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스포일러 주의

첫사랑과의 이별 이후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 - 건축학개론


만약 첫사랑과 이별을 하게 되고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녀는 혹은 그는 나랑 비교했을 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면 묘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한가인과 수지의 이미지 연결성과 달리 이제훈과 엄태웅간의 이미지 연결성은 상당히 괴리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학을 하는 이들이 밤낮없이 일을 하는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만큼 얼굴이 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현실에서는 이렇게 갑자기 내가 알던 '그녀'가 찾아오면 백이면 백 무슨 무슨 보험을 들라든지 아니면 무엇인가를 빌리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다행히 첫사랑의 환상을 깨지 않는다. 다만 그게 이미지상에서만 환상을 깨지 않았다는 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그녀는 세상물정 모르던 순수했던 그녀였지만 그에게 다시 찾아온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였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는, 그리고 돈 많은 남편과 이혼을 했지만 합의금으로 집을 짓는 모습이 오히려 측은할 정도이다. 그게 아버지를 위해서 짓는 집이지만, 또 그 집을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가 지어지는 집이지만 어쩌면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어야 더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첫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그렇다면 영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하 '그우녀') 는 다르게 다가올까. 90년대 남녀 고등학교를 다녔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소재를 가지고 관객을 찾고 있는 이 영화도 건축학개론과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 영화는 주인공 남성이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면서 인터넷 소설을 써내려가는 사이 이들의 과거의 모습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남성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주인공 남성을 포함한 그의 친구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한 여성의 결혼식 이후라고 본다면 건축학개론보다는 이 영화가 더 추억을 잘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영화 모두 첫사랑과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은 같지만 그 추억을 대하는 모습은 다르다.



그우녀의 경우는 그 나이때의 남녀의 생각차이라든지 가치관을 잘 드러내주고 있어 이들이 왜 갈등을 보이고 있는지 설득을 해주지만 건축학개론의 경우는 남자선배가 술에 취한 그녀를 부추겨서 그녀의 집에 같이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그녀와의 모든 추억을 '쌍년'이라는 말로 내팽겨버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는 그 약속을 아주 늦게 지킨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조금만 더 솔직했다면 건축학개론의 경우는 조금 더 자신들의 첫사랑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말이다. 그우녀의 경우도 남녀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은 화해할 줄은 아는 이들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여성은 남성보다 빨리 철이 들고 남성은 아직도 유치한 아이같은 모습이 보일 때마다 짜증이 나는 여성들이라면 왜 그우녀 속에서 그녀가 왜 화를 내고 울었는지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잘보이기 위해 영웅심리로 유치하게 군 남성의 모습도 그 시절 첫사랑을 해본 남자들이라면 동질감이 느껴질 것이다.


첫사랑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그녀에게 상처를 줘야 한다고 여겼던 그가 불쌍하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생각차이로 2년의 공백이 흐른다. 그 사이에 남성의 친구와 그녀가 사귀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날 지진이 전국을 휩쓸고 걱정이 든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웃으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누군가 정말 사랑했다면 상처를 주기도 또는 받기도 쉽다. 그렇지만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말로써 자신의 '첫사랑'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첫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인터넷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우녀의 결말이 더 공감이 들 수밖에 없는 건 바로 두 영화 감독의 연출 태도 때문이다. 이글루스 시사회 이벤트 당첨으로 보게 되었던 그우녀는 실제로 감독이 영화가 끝나자 등장했는데, 그는 이 영화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밝혔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이 건축학개론보다는 더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학개론의 경우는 그 당시의 약속을 남성이 지켰다는 것만 확인될 뿐 뭔가 석연치 않게 끝나지만 그우녀의 경우는 그녀의 미래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남성으로 나오고 있다.



글쎄 어느 결말이 더 좋은 결말이라는 것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한다면 상처를 받더라도 고백하라고 말하는 것은 두 영화의 공통적인 메세지라 할 수 있다. 고백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이 두 영화에서처럼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추억으로만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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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즈라더 2012/08/26 16:27 # 답글

    저는 <건축학개론>의 만듦새가 더 좋아서 마음에 들었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쪽의 부드러움도 참 좋았습니다.
    이런 유형의 영화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 쇠밥그릇 2012/08/27 10:41 # 답글

    이런 영화류는 가정이 있는 저같은 사람은 못 볼 것 같아요. (자꾸 옛날 생각이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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