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우스트' - 파우스트에 대해 말하다 + 공연 읽어주는 역장



5월 24일부터 6월 2일까지 인천 예술회관에서 열렸던 연극 파우스트는 너무나 유명한 괴테의 '파우스트'를 각색한 공연이었다. 사실 이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집에 있던 파우스트를 계속 찾았다. 여기서 찾았다는 건, 이 두꺼운 책이 그동안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수 없는 곳에 파우스트가 있어 한참을 찾아야 했다. 사실 어떤 공연을 보러가든 , 영화를 보든 원작이 있는 콘텐츠의 경우 원작을 보고 가는 건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공연장에서나 영화관에서 극의 흐름을 꼼꼼히 보지 못하고 띄엄 띄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천 예술회관에서 열렸던 연극 '파우스트'를 보러 갈 때는 원작을 읽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너무 큰 원작이고, 아주 간단하게만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글의 테그를 보시면 알겠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전반적으로 볼 때 신과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와의 대결로 파우스트가 악마의 뜻대로 될 것인가 아니면 회개를 하여 신의 영역으로 다시 들어올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채셨을 것이다.



하지만 연극 '파우스트'는 괴테의 파우스트의 극히 일부인 비극 1부의 내용만을 다뤄 공연을 진행했다. 즉, 괴테의 파우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원작을 읽고 갔던 시간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비극 1부의 내용만으로도 '파우스트'라는 콘텐츠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원작의 내용을 끝까지 읽다보면 결국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신과 함께 파우스트라는 인간을 속여 선택받은 그 인간이 악마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회개하여 신의 영역으로 들어올 것인가를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신과 악마는 왜 파우스트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신과 악마는 인간을 두고 이러한 내기를 하였던 것일까. 사실 신은 파우스트가 악마의 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설사 넘어간다고 해도 결국에는 회개를 하여 자신의 영역으로 다시 들어올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악마가 인간 세상은 비참하고 행복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자 바로 파우스트를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이 흥미롭다.

주님 : 내게 할 말은 그것뿐인가?
늘 불평만을 호소하러 오는 것인가?
땅 위엔 영원히 그대 마음에 드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메피토펠레스 : 나리, 언제나 마찬가지지만 그곳은 정말
너무 싫답니다.
괴로워하며 살고 있는 인간을 보면 가엾어져서,
도저히 그 비참한 패들을 놀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주님 : 그대는 파우스트를 아는가?

(중략)

주님 : 지금 그녀석의 섬기는 태도는 애매하지만
멀지않아 밝고 맑은 곳으로 이끌어주 주겠다.
정원사도 나무가 푸르르면
꽃과 열매가 앞으로 닥칠 세월들을 장식한다는 것을 아는 법이다.

메피스토펠레스 : 무슨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그 녀석을 슬금슬금
제 길로 끌어들이는 것을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 녀석에게 배반하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주님 : 그가 하계에 살고 있는 동안은
그대를 말리지는 않는다.
인간이란 노력하고 있는 동안은 헤매는 법이다.



결국 신이 먼저 파우스트를 언급하면서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파우스트를 상대로 시험에 들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신이 파우스트를 악마에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만큼 파우스트를 믿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마가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방관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조금은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이유없이 힘들어 질 때가 있는데 바로 그럴 때마다 이처럼 신과 악마의 계약으로 인해 인간이 시험에 들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파우스트는 신의 복사본인가 악마의 일부부인가

그럼에도 파우스트가 스스로 악마의 계약에 넘어간 이유는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신의 모습과 닮지 않은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을 하게 된 것이 발단이라 할 수 있다. 그 의심이 자신의 일에 회의를 갖게 이끌었고 종국에는 악마를 받아들이는 단계 이르게 한다.

지령 : 너는 네가 알고 있는 영과 닮았다.
나를 닮은 것은 아니다!(사라진다.)

파우스트 : (허물어지듯 쓰러지면서) 너와 닮지 않았다고?
그럼 누구를 닮았단 말인가?
나는 신과 똑같은 모습이다!
그런데도 너를 닮지 않았다니!

(중략)

파우스트 : 하지만 잠깐 더 머물러 있으면서,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주지 않겠는가

메피스토펠레스 : 지금은 좀 놓아 주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파우스트 : 내가 자네를 노린 게 아니라,
자네 쪽에서 그물에 걸린거야.
악마를 붙잡은 이상 놓칠 수 없지!
이토록 손쉽게 두 번 다시 잡히지는 않을 테니까.



즉, 신이 언급했듯이 파우스트는 갈피를 잃고 있는 상태이다. 즉,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가 들면서 악마와의 계약을 기꺼이 받아 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도 우리가 살면서 많은 충동에 노출이 되고 그 충동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파우스트의 선택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악마가 유혹하는 충동을 어떻게 소화시키고 또 여과 장치로 충동을 배출하느냐에 따라서 범죄자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시대 대부분의 파우스트들은 여과장치를 가지고 있어 흔한 충동에 노출은 되지만 범죄자가 되려는 악마본능은 잘 나오니 않는 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그 악마본능이 인간마다 분출된다면 이 시대는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의 뜻대로 '재미있는'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여과 장치가 고장나거나 없는 인간들이 범죄자가 되는 건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간과한 인간의 감정, 사랑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신과의 내기 싸움에서 결국 패하게 된다. 인천 예술회관에서 펼쳐진 파우스트 공연은 비극 1부에서 파우스트가 다음과 같이 회개하는 말을 하는 것으로 구성해 놓았다.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라고 말한다면 자네는 나를 꽁꽁 묶어도 좋다.

그때 나는 기꺼이 멸망하리라!

그때는 조종(弔鍾)이나 울려퍼지라고 하지.
그때 자네는 종 노릇에서 해방이다.
시계는 멈추고 바늘은 떨어지라.
나의 시간은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극 제 2부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헬레나를 파우스트가 만나고, 비극 제 1부의 죽은 연인인 그렌트헨의 영혼이 나타나면서 파우스트가 악마의 꾐에 넘어간 것을 회개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즉, 이 '파우스트'를 살펴보면 비극 제 1부에서는 아직까지는 악마의 꾐에서 허우적 거리는 인간의 모습인 반면 비극 제2부로 넘어가면서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왜 악마는 인간의 사랑을 간과했던 것일까. 메피스토펠레스는 신과의 대결에서 인간을 자기 하수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는다. 반면 신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력하는 동안은 헤매는 법이다."라며 인간을 믿어주고 있다. 결국 인간이 어떤 못된 행동을 해도 그가 죽기 전에 용서를 구하면 다시 신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메피스토펠레스와 신과의 대결에서는 신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내기였다. 아마도 악마는 자신의 '아주머니'라 할 수 있는 구약성서의 '뱀'처럼 인간을 잘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했을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 : 좋습니다! 뭐 그리 길게 잡을 것도 없습니다.
저는 이번 내기를 조금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목적을 이루면
가슴 가득히 함성을 지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녀석(파우스트)에게 쓰레기를, 더구나 기꺼이 처먹여 보이겠습니다.
제 아주머니인 유명한 뱀처럼 말씀이에요.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랑의 감정이 있으며, 그 사랑의 감정으로 하여금 진솔한 사람이 될 때 인간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칠 수 있다고 이야기가 되어 진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속아 넘어간 것에 대한 뉘우침으로 위의 같은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먼저 이승을 떠난 그레트헨의 영혼이 나타나 그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끄는 것이 괴테 '파우스트'의 전말이다.



'파우스트'를 말한다...

파우스트에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고뇌하는 인간? 신을 믿는 자의 결말? 신의 존재? 파우스트를 읽으면서,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속의 악마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악마를 이겨낼 때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결국 파우스트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정신적인 성장이라고 본다. 성장하는 만큼 고통도 따르게 된다. 그 고통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삶은 쾌락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신과의 내기에서 진 진짜 이유는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에게 쾌락만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은 그 쾌락을 위해 고통을 당할 누군가의 심정까지 알아야 하며, 종국에 자신의 고통까지 감싸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선택하게 되는 삶은 신이 인도하는 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게 묻는다. 나는 성장하였는가? 아마도 나는 아직 더 고뇌해야 하고 더 헤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파우스트' 처럼 사랑에 슬퍼하고 자신의 일에 회의를 겪으면서 종국에는 나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쯤에 나 역시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라고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블로스 상위 뉴스에 노출 시켜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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