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완전에 가까운 결단]- 노동자로서 전태일을 노래한 시들을 살피다 간이역, 다락방 책향기



2009년도 군대를 제대하고 졸업학기 때쯤에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다. 아마도 지도 교수님의 추천으로 선택한 책이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 시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다. 다만 5년이나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동안 나는 대학원이 아닌 사회인이 되어 있었으며 사회에서 뼈절하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의 제목이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라 붙여진 이유는 전태일 열사가 1970년 8월 9일에 남긴 일기의 한 구절이다. 아직도 전태일이라는 이름만 이야기하면 종북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은 노동자가 아닌지 한번쯤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에 전태일을 노래하는 이 시들은 앞으로도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엔
늦가을 낙엽 툭둑투득 지는 거리를
어깨 추욱 늘어뜨린 채 눈물 바람으로 걸어가는 그 예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채인 여자인 줄 알았다
다음엔
초겨울 함박눈 소복소복 쌓이는 산산에 앉아
무릎 사이 얼굴 파묻고 어깨 들썩이는 그 예쁜 여자가
공장이나 집에서 쫓겨난 여자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엔
봄 노을 지는 바닷가 갯벌에 퍼질러 앉아
스러지는 노을 바라보며 꺼이꺼이 울고 있는 그 예쁜 여자가
철탑에 오른 딸내미를 기다리다 실성한 여자인 줄 알았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뒤
불혹의 나이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알았다
지천명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서야
그 예쁜 여자들이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지 알았다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세금과 카드빚 때문이었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자꾸만 빚더미 속으로 빠져드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잔인한 세상살이
비정규직이라는 네 글자 때문이었다


- 이소리 시인의 [그 예쁜 여자 -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에게 바치는 시] 전문


현실을 읊조리하는 이러한 시들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정말로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세금과 카드빚'이 현실에서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전태일이 열사라 불리는 이유는 그때당시에 그가 노동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투신해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부당함을 세상에 이야기 했다는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건 아마도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현재도 계속 되고 있으며, 그러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여전히 표출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부족하다는 것에서 여전히 전태일은 회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를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용자가 유리하게 임금을 집행하고 사용자가 유리하게 계약이 이행되고 있다, 반면 노동자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시대에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때문에 책 [완전에 가까운 결단]은 노동자로서 살펴볼만하다. 이 시와 더불어 전태일 열사의 평전을 함께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나 역시도 이번 기회에 살펴볼 참이다. 노동자로서의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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