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코' - 사회를 비판하는 시각을 담다 간이역, 다락방 책향기



니콜라이 고골의 원작 '외투'와 '코'를 읽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살펴보게 된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더 노즈'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드렸었다. 오페라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원작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오페라 '더 노즈'를 리뷰한 글에서도 알려드렸지만 원작이 오히려 오페라보다 더 쉬웠다.


▲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와 '코' 이외 '광인일기'와 '감찰인'을 살펴볼 수 있는 펭귄 클래식 출판사의 책



단편작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빠르게 읽을 수 있었는데 사실 '더 노즈' 즉 코를 이해하려면 고골의 '외투'를 먼저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외투를 먼저 리뷰하려고 한다.


고골의 원작 '외투' - 비싼 외투가 신분을 높여주는 이상한 사회를 말하다


▲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



고골의 원작 '외투'는 아카키예비치라는 사람이 다 낡아빠진 외투를 페트로비치라는 양복점 주인장에 의해 새로 외투를 마련하면서 생겨나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낮은 등급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아카키예비치가 새로 구입하게 된 외투 덕분에 대접이 바뀌게 된 것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이 외투를 마련하는데도 사실 아카키예비치는 많은 망성임을 갖는다. 왜냐하면 높은 관료가 아니다 보니 외투를 새로 구입할 급료도 없지만 새로운 외투를 갖는 게 아카키예비치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아카키예비치를 놀리듯 양복점 주인인 페트로비치는 '꼭' 새로 외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

▲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부분


그랬던 그에게 보너스 금액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오면서 외투를 새로 짓게 된다. 어쩌면 보너스가 많이 나와서 외투를 새로 짓게 된 부분부터가 비극을 몰려오게 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아카키예비치가 일을 하는 관공서에서는 그는 낮은 관료이기 아무도 거들더 보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가 새로운 외투를 입고 오자 태도가 바뀌었다. 외투를 벗자마자 그에게 다가와 외투에 대해 칭송하고 아카키예비에게 친한 척을 한다.

더 웃긴 것은 외투를 새로 샀으니 파티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이들 때문이었다. 아카키예비치는 보너스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받아 샀을 뿐이고, 물론 조금은 뻐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파티를 열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 아카케예비치의 모습이 딱했는지 선뜻 자신이 연회를 베풀겠다고 나선 이가 있는데 부계장으로 보이는 이였다. 이 파티가 처음에는 흥에 겨웠겠지만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카키예비치는 외투를 강탈당하게 된다. 다시 아카키예비치는 자신의 분수에 맞는 옷차림을 하게 된 셈이다.



외투를 잃어버려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사회의 썩은 단면을 보여준다


아카키예비치는 외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외투를 입었을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다르게 대하는 것에 더 분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분함이 결국은 죽음을 몰고 온다. 외투를 잃어버렸다고 그 원통함 때문에 죽기까지 한 아카키예비치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지만 외투를 가져간 인물이 고위 공무원 급인 장군이 가져간 것 또한 소설 속 사회가 얼마나 썩어 문드러져 있는 사회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더 희한한 것은 죽어서도 이 외투를 포기하지 못해 자신의 외투를 찾아 나선 아카키예비치의 모습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죽었으면 욕심을 버리고 그 한 서린 마음도 내려놓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유령으로 나타나는 아카키예비치의 모습은 괴기스러운 존재 그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본래의 주인에게 물건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 힘있는 자가 물건을 독차지 하는 건 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직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분을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힘으로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찍어내기를 좋아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는 고골의 '코' 원작에서도 드러난다.



고골의 원작 '코' - 자신보다 더 높은 신분의 외투를 입고 있다고 해서 코를 찾지 못하는 희한한 사회


외투에서 느꼈던 사회 부조리는 고골의 원작 '코'에서도 드러난다. 이미 '더 노즈'라는 코를 오페라화한 작품을 리뷰한 것에서 이야기는 했지만 이 이야기는 하룻밤만에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하룻밤만에 코를 잃어버린 남자가 코를 찾아 다니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것인데 코가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옷 즉, 외투를 걸치고 있어 말도 제대로 못 걸로 또 자신의 코를 찾지 못하는 해프닝이 펼쳐진다.

물론 코를 찾았다고 해서 그 코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도 아니다. 또한 코를 찾아서 돌려주는 경찰관의 태도를 살펴보면 경찰관은 굉장히 불손하게도 뇌물을 원하고 있다. 코를 찾기 위해 백방을 뛰면서 다니는 코발로프와 대조적으로 느긋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이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코로 나오며 어느새 코와 코발로프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


▲ 니콜라이 고골의 '코' 부분



니콜라이 고골이 말하는 코는 상징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금전이 될 수 있고, 어떤이에게는 명예일 수 있으며 또 다른 이에게는 삶의 희망일 수 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코를 잃어버린 코발로프의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그렇게 필요하고 중요한 코가 자신보다 높은 관료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되찾지 못하는 건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분계층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도 통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신분계층이 확연하게 있는 시대를 풍자하는 소설 같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신분이라든지 계급주의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평등하지는 않다. 분명히 상류층이라는 것도 존재하며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뿐만인가 연봉과 계약직이냐 정규직이냐를 따지며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내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에서 가진자에게 무언가를 빼앗긴다면 우리는 다시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바로 이런 모습이 코발로프의 모습이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현실에서도 힘있는 자가 강탈해 가면 그것을 되찾기가 어렵거나 아예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이 소설들이 현실에서 던지는 메세지도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내게도 코발로프 처럼 하룻밤만에 무언가를 잃게 되는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원통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페라 '더 노즈'를 보지 못한 분들은 니콜라이 고골의 원작 '외투'와 '코'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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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4/05/26 04:13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ㄴㅇㅈ 2014/05/26 04:14 # 삭제

    으악 비밀글로 했더니 내가 못보다니 ㅠㅠㅠ
  • 간이역 2014/05/26 07:03 #

    건달들 중에서 고관이 있다는 부분은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관의 외투가 자신에게 꼭 맞는다는 말을 하죠. 아까끼에비치의 외투는 맞춤복입니다. 그런데 남의 외투를 뺏었는데 자신에게 '꼭' 맞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서 분명히 그 건달들 중에서 고급관료가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시 읽어보면 님의 판단으로 해석해도 나쁘지 않는 것 같네요. 도움이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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