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을 묻다' - 사랑을 정의 내리려는 발칙한 연극 + 공연 읽어주는 역장



연극 '사랑을 묻다' - 사랑을 정의 내리려는 발칙한 연극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5월 24일까지 올랐던 극단이루의 연극 '사랑을 묻다'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선정작], [2013 차범삭 희곡상 수상작] 으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이 극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을 정의 내리려고 한다. 사랑이 무엇이기에 '사랑을 묻'게 되는 것일까.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지난 5월 24일까지 무대에 올랐던 극단이루의 연극 '사랑을 묻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연극 '사랑을 묻다' , 이제 읽어 본다.


스포일러 주의


연극 '사랑을 묻다' - 연극 속 또 다른 나에게 묻다


연극 '사랑을 묻다' 포스터



연극 '사랑을 묻다'는 연극 속 또 다른 연극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등장한다. 고전 중에 고전이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조금은 식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랑의 의미를 묻는 콘텐츠 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인간 본연의 본능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은 지금까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 '사랑을 묻다'의 시간제 강사로 나오는 50대의 명호 역은 로마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원한다. 연극배우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의 시간제 강사 일이 즐겁지 않다. 다시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 명호에게는 현실 속 가장으로서의 삶이 버겁게 다가온다. 삶이 무거운 건 어쩌면 비단 명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네 아버지, 가장 역할을 하는 그 어떤 이도 부양 가족이 있다면 현실은 투쟁의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살면서 꿈을 일부러 잃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소중한 꿈을 포기할 만큼 가족 그리고 다른 그 무언가가 그 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 뿐이다. 극 중의 명호라는 50대 가장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가 다시 연극을 하고 싶고, 그 연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며 사랑을 추구하는 그 모습을 응원하고 싶어 진다.


연극 '사랑을 묻다' - 사랑을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기에 연극의 소재이자 주제로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식상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더군다나 연극 '사랑을 묻다'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와 공연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뻔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이 뻔한 작품 속의 작품은 공연의 주제를 더욱 부각 시킨다. 아마도 연극 '사랑을 묻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처럼 지독하고 지고 지순한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여겨진다.

연극 '사랑을 묻다' 공연 시작 전 모습



명호는 시간제 강좌에서 제자 선희를 '줄리엣'에 빗대면서 조금씩 그녀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선희 역시 명호를 알아가면서 그를 남자로 좋아하게 된다. 이들의 사랑은 현실에서는 불륜이다. 그 불륜을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이야기한다. 불륜에 의해 한 가정의 사랑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또 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그 순간부터 사랑의 대상이 달라진 것이다. 사회 통념상 불륜을 사랑으로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크게 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명호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다' 혹은 '사랑이다'로 놓기 이전 사랑을 정의 내릴 수 있는지 부터 짚고 나갈 필요가 있다. 연극과 영화에서 사랑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식상하지만 모든이의 사랑이 다 똑같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명호와 선희의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사랑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다가오는 달콤 씁쓸한 초콜릿이자 생채기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있지만 내게는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없다.

명호와 선희의 사랑은 사회 통념상 불륜이지만 이들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머리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마음 가는대로 가게 된다. 그 끝이 뻔히 보이지만 아픔을 감수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사랑은 정의 내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랑을 굳이 정의 내린다면 그건 앞서 언급했듯이 '지독하고 지고 지순해 지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다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돌아간다. 연극 '사랑을 묻다'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인용하게 된 것이다.


연극 '사랑을 묻다' - 나에게 묻다

연극 '사랑을 묻다' 커튼콜 모습



연극 '사랑을 묻다'에 명호는 시간제 강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개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개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다음 순서는 '자기 게시'가 순차적으로 나타나고 마침내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하게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하게 할 수 있는 그 공감능력은 스토리텔링이다. 나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그 능력은 나를 사회 구성원 속에서 확인해 가는 과정임을 연극 '사랑을 묻다'는 말하고 있다.

연극 '사랑을 묻다'에서 말하는 '사랑'은 따라서 나와 사회 구성원 간의 관계로 다시 놓여진다. 그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가', '나의 사랑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공감이 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변을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자신을 알아가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나를 확인하고 나에게 묻는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쩌면 나의 사랑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연극 '사랑을 묻다'가 아쉽게도 지난 5월 24일에 막을 내렸다.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를 수 있길 바라본다.

이 글이 유익하셨다면 추천 버튼을 눌러 주세요~




버즈블로그 위젯


프레스&위드블로그위젯

위드블로그 베스트 블로거


A타입 클린 캠페인 위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