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낙원포차' - 성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다 + 공연 읽어주는 역장



연극 '낙원포차' - 성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다


대학로 까망 소극장에서 지난 4월 26일까지 무대에 올랐던 연극 '낙원포차'는 종로 낙원상가 쪽 저녁 뒷골목의 풍경을 배경으로 했던 공연이었다. 그곳은 게이들이 자신들의 끼를 내보이는 곳이기도 한데, 다른 지역보다 좀 더 성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한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성 소수자들은 여전히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까지 대학로 까망소극장에서 올랐던 연극 '낙원포차'



연극 '낙원포차' 는 이런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다. 일반인들이 이들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그렇지만 성 소수자들의 삶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연극을 지금부터 읽어보려 한다.


스포일러 주의


연극 '낙원포차' - '낙원'이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연극 '낙원포차'의 커튼콜 모습1



성 소수자에게 한국이라는 곳은 그렇게 '낙원'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별로 없다. 아니 아예 없다라고 정정해야 더 작금의 시대에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앞서 글 도입 부분에 종로 낙원상가 뒷골목이 게이들이 저녁 때가 되면 그 끼를 발현 시킨다고 언급했다. 다른 지역보다도 성 소수자에게 그나마 열려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곳이 '종로'와 '이태원'일 뿐이다. 이 시선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자유스럽다는 것이지 그곳들 역시 낙원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다.

연극 '낙원포차'는 성 소수자가 아닌 그들을 어느 정도로 이해하는 일반 남성이 주인으로 있어 술집 이름을 [낙원포차]로 짓고 운영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이곳에 모여드는 성 소수자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독특하고 특이하게 행동하고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성 소수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그런 행동들이 더 정상적이다.

따라서 성 소수자 역할을 맡은 극 중의 그들의 행동과 말이 관객에게 웃음을 줄 지언정 성 소수자들의 모습을 누구도 비웃을 수는 없다. 성 소수자들은 자연인으로서 순간 순간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회는 성 소수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회의 그런 차별까지도 감내하며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고, 이들의 고민을 들어줘야 하는 것인데 대형교회와 일부 과격단체 등으로 인해 성 소수자들은 해 마다 상처를 받고 있다.


연극 '낙원포차' - 가족이 성 소수자일 때의 문제

연극 '낙원포차'는 사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다뤘지만 그보다는 만약 자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성 소수자가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하여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시해 주었다. 극 중 술집 주인의 여자 조카가 어느 날 프랑스 유학 중에 나타난다. 그녀는 잠깐 한국에 온 것 같은데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삼촌의 가게에 먼저 들렸다. 그리고 한 달만 아르바이트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삼촌은 좋으면서도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극 '낙원포차' 커튼콜 모습2


그녀의 꿍꿍이(?)는 정말로 무엇일까. 그녀와 삼촌간의 관계는 거의 아버지와 딸같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삼촌이 결혼을 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삼촌을 따랐기에 두 사람은 뭔가 긴밀함이 보통의 삼촌과 조카보다도 더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그리고 결심을 삼촌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라 여겨진다.

그녀는 프랑스에 결혼할 여자가 있다. 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이 결혼 소식을 삼촌에게 제일 먼저 전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잠깐 귀국했던 그녀는 삼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함에 충격을 받는다. 항상 게이들과 함께 있고,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왔던 삼촌이 레즈비언이고 여자와 결혼한다는 조카인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의 서운함이 몰려온다.


연극 '낙원포차' - 그럼에도 성 소수자들의 삶을 이해하다

그녀가 삼촌에게 실망하고 결혼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전, 삼촌은 조카인 그녀가 자신을 위해 만든 옷을 발견하게 된다. 삼촌 이미지와는 좀 다르게 다소 화려하고 세련된 자켓이지만 정성이 깃들었다는 것을 느낄만큼의 옷이었다.

연극 '낙원포차' 연출가 '저기'님의 모습



삼촌은 그 옷을 입고 그의 가게에 단골로 오는 두 게이들과 함께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는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일명 종로의 SES가 된 그들은 SES의 음악에 맞춰 그녀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 아마도 그녀의 모든 생활을 삼촌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한 발짝 떼었을 뿐이다.


연극 '낙원포차' - 작은 희망을 걸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우리 시회는 아직 성 소수자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성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매년 열리는 '퀴어문화축제'가 지정된 장소가 아닌 매년 다른 장소로 잡히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그나마 제대로 열리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대형교회의 목사 그리고 그를 따르는 맹목적인 신앙인들이 제대로된 이성없이 성 소수자들을 몸으로, 언어로 상처를 준다.

그들은 예수가 성 소수자의 삶을 반대했다고 늘 설교 아닌 설교를 하지만 그들이 증거로 이야기 하는 성경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 구약과 신약 통틀어서 하나님과 예수님 모두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 라고 '나약한 인간'들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이 표현이 사회에서 "약자들을 괴롭히라"라는 것으로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이 되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교화 방식도 예수가 했던 그것과 전혀 같지 않다. 그들의 '그 짓'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이기적인 횡포일 뿐이다.

사회를 통합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오히려 성 소수자들을 '악의 측'으로 놓으면서 사회를 분열시킨다.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하여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동성애자들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교황이 동성애를 완벽하게 품는 것은 실패했다. 역시 보수적인 카톨릭 교회가 문제였다. 하지만 적어도 교황이 동성애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작은 희망을 건다.



▲ 연극 '낙원포차'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한 관련 영상 살펴보기



그리고 외쳐 본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어쩌면 이건 내가 다른이들에게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성숙해 질 때까지 연극 '낙원포차'는 막을 내렸지만 연극이 전하는 메세지는 무기한 연기된다. 나와 당신과 사회과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때가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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